“우리 아이는 소리에 너무 민감해요. 손 씻는 것도 싫어하고, 옷 태그 때문에 매일 아침 전쟁이에요.”
“저희 아이는 아프거나 추워도 잘 못 느껴요. 넘어져도 울지 않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반응이 없을 때가 많아요.”
"도대체 우리 아이 왜이러나요?"
‘감각처리장애(Sensory Processing Disorder, 이하 SPD)’를 알지 못하는 부모님들이라면 아이의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의문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SPD는 뇌가 감각 자극을 효과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태로, 그 양상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이번 글에서는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SPD란 무엇인지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감각에 과민한 아이 –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요”
6세 혜진이는 소풍날마다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바람 소리, 다른 아이들의 목소리, 교통 소음이 섞인 외부 환경은 혜진이에게 ‘공격’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특정 질감의 옷을 거부하고, 양치질이나 머리 감기기 같은 일상적인 활동에도 극심한 저항을 보이곤 했습니다.
이런 행동들은 감각이 과민해서 오는 행동입니다. 뇌가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역치' 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역치'가 매우 낮아 아주 작은 자극도 충분하게 느껴져서 보통의 자극이 매우 큰 자극 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감각에 과민한 아이들은 소리, 빛, 냄새, 촉감 등 외부 자극에 과도하게 반응하거나 회피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자주 호소하고, 특정 상황에 유난히 스트레스를 받으며 감정적으로 쉽게 무너지는 모습도 보이게 됩니다.
2. 감각에 둔감한 아이 – “더 세게 흔들어줘요”
반면 5세 윤호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통증에 둔감했습니다. 계단에서 넘어진 날도 별다른 반응 없이 일어났고, 놀이 중 벽에 머리를 부딪혀도 웃으며 계속 놀았습니다. 부모는 오히려 ‘담력이 세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감각 자극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였습니다.
이러 아이들의 '역치'는 매우 높습니다. 보통의 자극으로는 역치를 채울 수가 없어 더 많은 자극을 원하게 됩니다. 역치가 채워지지 않으면 일상을 수행해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정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잠을 자기위한 자극을 계속해서 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소리나 촉감에 무심하거나,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몸을 세게 흔드는 놀이를 좋아하고, 위험한 행동을 자주 하며, 충동적으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3. 감각 입력을 혼란스럽게 처리하는 아이 – “몸이 말을 안 들어요”
7세 민서는 체육 시간마다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공을 던지거나 받는 활동이 특히 힘들었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중심을 잃고 휘청였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할 때도 몸을 비틀거나 엉덩이를 들썩이는 일이 잦았습니다.
민서처럼 감각 정보를 잘 조절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몸의 위치, 움직임, 균형에 관련된 ‘고유수용감각(근육·관절 감각)’이나 ‘전정감각(평형감각)’ 처리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 결과 일상적인 움직임이 어색하고, 활동 중 사고가 잦아지며, 학습과 주의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감각처리장애가 단순히 ‘예민함’이나 ‘무관심’으로 오해되기 쉬운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영유아기에는 정상 발달의 한 양상으로 보여지기도 하여 조기 선별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반복적이고 일상에 영향을 주는 행지속된다면, 전문가의 평가를 받아보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내 아이의 모습이 위에 사례들 중에 하나처럼 보이시나요?
아이의 단편적인 한가지면을 크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보여지는 이상한 행동들이 있다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반드시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감각처리장애의 구체적인 평가 방법과 가정에서의 대응 팁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SPD가 의심되는 경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행동을 '이상한' 것으로 여기기보다, '도움이 필요한 신호'로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감각의 문제는 아이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뇌가 감각 정보를 해석하는 방식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혼란스럽거나 힘들어 할 수 있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신호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수 있을지 전문적인 평가방법과 가정에서의 대응방법에 대해서 계속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전문가 평가 – 신경 발달의 창으로 아이를 보다
감각처리장애는 현재 국내에서는 공식적인 의학 진단명은 아니지만, 작업치료사나 감각통합 전문가의 평가를 통해 아이의 감각처리 유형과 어려움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 감각프로파일(Sensory Profile): 부모가 작성하는 문항을 통해 아이의 감각 처리 능력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안에 쉽게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SP2 버전까지 나와있습니다. 연령별로도 검사할 수 있어 K-ISP2(0-6개월), K-TSP2(7-35개월), K-CSP2(3세~14세11개월), K-SSP2(3-14세11개월-축약버전) 로 나누어집니다. 특정 감각 자극에 대해 회피, 추구, 무반응, 과민 반응 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평가합니다. 이 평가 결과에 따라 맞는 중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 SIPT(Sensory Integration and Praxis Tests): 미국에서 개발된 표준화된 검사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치료사가 실시하며 4~8세11개월 아이를 대상으로 합니다. 대상자에게 시각, 촉각, 운동감각 및 운동과제를 수행하도록 요구한느 17개의 하위 영역이 있고 전체 검사 시간이 2시간 정도 소요될 수 있습니다.
2. 가정에서의 대응 – ‘그럴 수도 있어요’에서 출발하기
전문가의 도움과 병행하여, 일상 속에서 아이를 이해하고 지원하는 방법도 매우 중요합니다.
- 감각 다이어리 쓰기: 하루 중 언제, 어떤 자극에 민감해하거나 무반응한지 간단한 기록을 남기다 보면 아이의 감각 패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런 감각패턴으로 아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예: “아침 양치 때마다 심하게 울음. 옷 태그 만지는 걸 극도로 싫어함.” - 감각을 조절해주는 환경 만들기: 소리나 촉감에 민감한 아이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환경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밝은 형광등 대신 따뜻한 조명을 사용하거나, 태그 없는 옷을 입히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 적절한 감각 자극 제공하기: 둔감한 아이는 일정 이상의 감각 자극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부드러운 브러싱(감각 브러시를 이용한 피부 자극)이나, 딱딱한 식감의 간식을 제공하는 것도 감각을 자극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놀이를 통한 감각통합 향상: 균형 잡기 놀이, 모래놀이, 물놀이, 그네 타기, 뒹굴기 등은 감각자극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합니다. 특히 아이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억지로 시키기보다,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를 파악하고 그 놀이 속에서 감각을 다루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감각처리장애는 조기 발견과 꾸준한 지원을 통해 충분히 개선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아이가 주변 환경을 자신만의 세계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감각은 아이가 세상을 느끼고 반응하는 창입니다. 그 창이 조금 흐려져 있다면, 우리는 그 창문을 함께 닦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관찰과 따뜻한 시선은 무엇보다 강력한 첫 치료입니다.